
9월 17일 오후 5시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정의관 대강당에서 문형배 前 헌법재판소장의 RC 명사특강이 개최되었다. 이번 강연은 RC뿐만 아니라 교수님, 재학생까지 모두에게 열려있는 특강으로 진행되어, 약 1200명의 연세인이 참석하여 큰 관심을 받았다.
문형배 (前) 헌법재판소장은 1992년에 임관하여 2019년까지 판사로 재임 후,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2024년 10월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마지막으로 퇴임했다. 현재는 책 『호의에 대하여: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를 출간하고, 블로그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 이야기"를 운영하며 대학 초청 강의를 나가는 등, 개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특강은 '헌법소원과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었다. 문형배 前 헌법재판소장은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위트 있게 이야기하며 강의의 문을 열었다.

▲문형배 前 헌법재판소장이 '헌법소원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특강을 시작하였다.
문형배 前 헌법재판소장은 헌법소원이 단순히 법률적 절차를 넘어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과정임을 역설했다.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행사나 불행사로 기본권이 침해당했을 때 국민이 직접 헌법재판소에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에 따른 입법을 기반으로 하지만, 다수결 과정에서 소수 의견이 과소 대표되거나 침해될 수 있다. 헌법소원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이러한 잠재적 불의를 바로잡아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심화시키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출직 대표자들이 표심이나 정치적 유불리로 인해 시대 변화에 따른 법률 개정을 꺼릴 때, 비선출직인 헌법재판관은 정치적 고려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헌법의 보편적 가치에 따라 위헌성을 판단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한다고 말했다.
▲특강을 듣기 위해 정의관 대강당에 1학년 RC, 재학생, 교수가 약 1200명 모였다.
이어 헌법과 민주주의가 기본권 보장 및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어떻게 실현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 진술 녹화 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언급하며, 피고인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와 '피해자의 인격 보호'라는 두 가치가 충돌할 때 헌법이 지향해야 할 조화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재판은 피고인이 납득할 수 있도록 진행되어야 하며, 피고인 측 변호인에게 증언에 대한 질문 권한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는 화상 시스템 등을 통해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 측 변호인에게 질문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두 권리를 조화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돈이 든다는 이유로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으며, 타국 사례에서도 유사 제도가 위헌 결정이 난 전례를 들어 우리나라 제도의 위헌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이는 헌법이 단순히 어느 한쪽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균형 있게 보장하려 노력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했다.
또한 "국회가 만든 법을 헌법재판관이 무효로 돌릴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며 비선출 권력의 견제와 균형 역할을 설명했다. 동성동본 혼인 금지와 같은 과거 법률 사례처럼 국회가 표심이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비합리적, 시대착오적 법률 개정을 하지 않을 때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재판관들은 선출직이 아니기에 표를 의식할 필요가 없으며, 권력 구성에서 '아웃사이더'에 위치하여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롭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헌법재판소는 선출된 권력인 국회와 대통령을 견제하며, 다수결로 통과된 법률이라 할지라도 헌법의 기본 정신과 가치에 부합하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권력 남용을 방지하고 소수의 권리 및 보편적 인권을 수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강의를 마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학생들은 재판장에게 앞다투어 질문하며 긴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의미 있는 질문을 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한 학생이 문형배 前 헌법재판소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다독으로 유명하신 재판장님이 최근에 읽으셨던 책 중에서 저희에게 도움이 될 법한 책을 추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질문에,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는 『어떻게 민주주의가 무너지는가』를 추천합니다. 또 다른 추천 책은 블로그에 독서 일기 추천 카테고리를 확인해서 골라 읽어봐 주세요."라고 답변했다.
"AI, 가상 세계와 같은 디지털 세상이 도래하며 많은 산업에 영향을 줄 거라고 예상이 됩니다. 이것이 민주주의나 자유에 대한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 같은 지, 저와 같은 2030 청년들이 가졌으면 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에 대해 "AI가 민주주의에 끼치는 영향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은 정보가 공유됨으로써 민주주의의 조건을 이룰 수 있는 것이지만, 부정적인 영향으로는 AI는 결국 우리 생활에 깊숙이 사생활의 통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적 공간이 없는 민주주의는 공허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간의 영역을 정치가 통제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데, 정치에 AI를 활용하면 그럴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런 점에서 우려가 됩니다. 다음에 청년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제 아들한테 하는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청년인 제 아들이 결정해야 할 일에 저는 한 번도 선택을 대신해 준 적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이에 대한 의견을 말할 뿐입니다. 결국은 본인의 결정으로 인한 선택과 책임은 스스로 지는 것이고, 저는 아들이 실패하여도 질책하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했다.
마지막 질문으로 "법의 본질에 대해서 질문드립니다. 법은 언제나 강자의 편, 또는 약자의 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판장님은 이 사회에서 강자와 약자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적절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는지 궁금합니다."에 대해 "강자는 남에게 싫은 일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약자는 먹고살기 위해서 그 요구에 따라야 하는 사람이에요. 법은 강자의 횡포를 막고 약자의 정당한 이익을 보호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고위 공직자의 뇌물, 대기업 회장의 구조적 횡령 배임과 같은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엄하게 처벌해야 나라가 공정해질 수 있습니다."
이번 특강은 헌법소원 제도가 단순히 법률적 절차를 넘어, 우리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하고 깊이 있게 만드는 과정임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헌법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상식'에 기초하여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한다. 다수결의 그림자 아래 놓일 수 있는 소수의 이익까지 보장하려는 헌법재판소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는 자리였다. 이처럼 헌법재판소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서, 입법부를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역할은 민주주의의 지속적인 발전과 모든 국민의 존엄한 삶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다. 강연을 통해 헌법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헌법소원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길고 심도 있는 질의응답 시간으로, 사회에 대한 성찰과 권력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다짐하게 되는, RC와 연세인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