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니움하우스는 2015년부터 예병일 마스터교수 지도 아래 운영되고 있었다. 2020년을 마지막으로 솜니움하우스를 떠나게 되는 예병일 교수는 처음 솜니움 하우스 마스터교수를 맡게 된 후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장 고민했다고 한다. 예병일 교수는 항상 마스터 교수와 친해지기, 분반모임 참관하기 등 RA들과의 소통 뿐만아니라 RC들과의 소통을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예병일 마스터교수의 마지막을 많은 RA와 RC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6년간 솜니움 하우스 마스터 교수를 지내고 2020년 2학기를 마지막으로 솜니움하우스를 떠나게 된 예병일 교수와 함께 마지막 학기를 보낸 RA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솜니움 예병일교수
Q. 처음 솜니움 하우스 마스터교수를 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2014년에 의과대학 기숙사 지도교수를 했는데 아무 일도 없어서 재미가 없었습니다. 당시 2년간 마스터교수를 하신 의과대학 정순희 교수님께서 그만두시게 되면 의과대학에서 후임자를 찾았고, 여학생 기숙사로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 지원을 했는데 의과대학 교수는 남자 교수라도 학부형들의 불만이 적을 거라 판단한 당시 센터장(물리치료학과 이충휘 교수)님께서 매지2학사로 보내 주셨습니다. 2015년까지는 학사 이름으로 구별하다 2016년부터 하우스별로 고유의 이름을 붙이게 되었는데 매년 신입생 OT 때 마스터교수를 처음 만나는 날 꿈을 키우고, 이루자고 이야기하는 것에서 유래하여 라틴어로 꿈을 의미하는 솜니움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Q. 6년을 솜니움의 마스터교수로 계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세요?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일중 하나는 대학 1학년 때 포항제철에 연수를 갔다가 마지막 날 가든파티를 한 일이었습니다. 워낙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이 기억을깨지 않기 위해 다시 해 보고 싶지 않았는데 2015년 1학기 RA들인 매아리와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면서 기억에 남을 선물을 하기 위해 가든파티를 계획했습니다. 하필이면 전날부터 비가 내려 당일 오후 3시에 그쳤지만 잔디밭이 젖어서 가든파티를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첫 학기를 잘 보낸 것이 6년간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계기가 되었습니다.
Q마스터 교수로써 마지막 한해는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RC프로그램도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는데 비대면이였기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1학기 초기에는 비대면이라 어색함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적응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화면을 끄고 교수와 만나는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점에서는 그런 태도가 아쉽습니다. 에피소드라면 나는 얼굴을 모르는 학생이 아주 친근한 것처럼 접근해 올 때입니다. 어차피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잡기까지 적어도 수년간 교수 등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자신을 감추는 것은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 아니며, 상대는 모르는데 친근하게 느낀다면 손해를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2년간 교내근로 면접을 보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사회에서 남들보다 앞설 수 있는 기회를 쉽게 날릴 태도를 가지고 있는 걸 알려 주면서 시정하라고 했는데 올해 비대면 수업을 하다 보니 그런 태도가 더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Q. 총 12학기 80명의 RA에게 또 12학기동안 솜니움 하우스를 거쳐간 RC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처음에는 여대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항상 정장차림에 함께 식사도 하지 않고 한 학기를 보냈습니다. 그랬는데 모든 게 기대 이상이어서 첫 학기 RA들을 위한 내 나름대로의 송별회(farewell party)를 준비했고, 그 후로 솜니움하우스에서는 송별회가 아주 중요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모두에게 잘해 주지 못하고, 나와 가깝게 지낸 이들만 좀 더 챙겨준 것 같은데 더 친해질 수 있을 만한 RA들과 좋은 기회를 가지지 못했지만 나는 영원한 대장이니 필요할 때 언제든 찾기 바라며, 잊고 살더라도 결혼할 때와 휴대전화 번호 바뀔 때 연락하기로 한 약속은 꼭 지키기 바랍니다.
▲RA들이 준비한 예병일 교수 생일 선물
Q. 마지막으로 6년동안 솜니움하우스에서 마스터 교수를 지내고 떠나게 되셨는데 소감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모든 일이 좋았던 것은 아니지만 지난 시간에 생긴 앙금을 지우고, 나 스스로에게 만족하면서 떠나게 되어 기쁩니다. 내 인생에서 예상치 못한 행복함과 즐거움을 많이 맛볼 수 있어서 좋았으며, 앞으로 다른 일을 하더라도 지난 6년간의 추억은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오랜 기간 솜니움하우스에서 예병일 교수와 함께 솜니움 하우스를 이끌었던 RA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동한 예병일 교수와의 추억에 대해 공유해 보았다.
Q. 예병일 교수와 RA를 하면서 생긴 추억이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홍유림 RA
대장님과의 추억은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추억을 한 가지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이번에 코로나로 인해 직접 대면으로 RA를 하지 못해 아쉬웠는데요ㅠㅠ 특히 저는 제주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대장님이 이런 아쉬운 제 마음을 알아주셨는지 깜짝으로 제주도에 와주셨어요! 그것도 당일치기로 와주셨습니다!
과제랑 시험때문에 지쳤었는데 대장님이 맛있는 음식이랑 디저트도 사주시고 책도 선물해주시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셔서 힐링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 보러 당일치기로 제주도 와주신 분은 대장님이 처음이었어요! 아직도 그 당시에 놀란 마음과 행복했던 추억을 잊지 못합니다!
P.S. 대장님은 저에게 정말 소중한 분이십니다! 대장님 덕분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었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때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대학교에서 제일 잘 한 일이 무엇이냐?' 라고 물어본다면 저는 바로 '솜니움 하우스에 RA를 지원한 일이다.' 라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만큼 1년 동안 솜니움 하우스 RA를 하면서 그 순간 순간이 정말 행복했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솜니움 하우스에서 함께 또 다른 추억을 만들 수 없어 너무나 아쉽지만, 교수님은 영원히 솜니움 하우스의 대장님이십니다. 늘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홍유림 RA와 예병일 교수
윤수민 RA
때는 2019년 알에이 면접을 보고 난 후, 교수님께 톡이 왔어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시는 내용이었죠. 저는 경기도 안산에 살고 있는데 여기까지 오신다고 하셔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알에이가 되고 싶어서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은근하게 들어왔던 터라 조금은 특이한 교수님인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직접 찾아온다니까 이상하기까지 한 거예요. 20분 10분 거리도 아니고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말이에요. 직접 만나보니 교수님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었어요. 쭈뼛쭈뼛하지 않고 그냥 바로 실행해야 한다고 어느 순간 결심하셨대요. 그래서 필요하면 출장 면접도 보러가신다고 말씀해주셨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가끔 과제나 시험 공부하기 싫을 때 작년 교수님과의 만남을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곤 해요! 쭈뼛쭈뼛대지 말고 그냥 하자!
김서현 RA
2018년 1학기 RA를 떨어지고, 2018년 2학기 면접을 볼때 '이번에 떨어지면 이제 방학마다 실습도 있고 학과일이 바빠 다시 RA에 도전하러 오지 못할것같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면접 후 교수님 홈페이지에 합격한 RA들에게 익명으로 교수님께서 해당 합격자에대한 편지를 써주시는데 거기에 제가 말한것처럼 ' 이번에 선발되지 않으면 앞으로는 RA 지원할 기회가 없을 거라고 엄포를 놓았으니'라는 글을 보고 난가?하는 생각을 했지만 합격문자가 오지 않았고 저 말고 다른 사람도 그런말을했구나, RA는 대학생활에 없구나 하고 포기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4학년 2학기 졸업을 앞두고 RA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덕분에 대학 생활 동안의 버킷리스트를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달성했습니다. 저도 대장님이라고 부를 기회가 생겨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대장님 덕분에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졸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대장님!
마지막 한 해가 비대면으로 진행되어 솜니움하우스 RA들도 예병일교수의 마지막을 다 함께 축하하지못해 많이 아쉬워 하고있다. 6년 동안 솜니움 하우스에서 RA를 한 80명의 RA들, 그리고 12학기 동안 솜니움하우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지낸 수많은 RC들에게 영원한 솜니움 대장님(예병일교수 별명)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